서울고등법원 2016나 2087OOO 손해배상(기)
냉동새우 돌려막기 사건
가) 사건의 개요
1) 원, 피고는 모두 수산물 매매업을 하는 회사인데, A는 피고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수산물 매매 업무를 담당하다가 2013년 1월 경부터 원고를 위하여 수산물 매매 업무를 수행하였고, 2013년 5월 공식적으로 피고 회사에서 퇴사 처리되었다.
2) A는 피고의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면서 피고 명의로 거래처에 수산물을 공급하면서 실적을 쌓기 위해 매입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했음에도, 회사인 피고에게 이를 숨기고 매입원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한 것처럼 전산자료를 허위로 작성하였고, 적자 거래로 인한 피고 회사의 손실을 숨기기 위해 상부에는 구두로 보고하며 정식 품의를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 명의로 다른 거래처로부터 수산물을 구입해 그 판매대금으로 손실을 보전하는 이른바 '돌려막기'식의 거래를 반복했다.
3) A는 2013년 1월~4월 경 원고에게 B, C, D 회사로부터 수산물을 매수하여 원고가 지정하는 E 회사로 납품하겠다고 말하였고, 원고는 이를 믿고 B, C, D에 총 2억 7,000만 원을 송금하였다.
4) A는 B, C, D 회사에 가서는 '원고와 피고 사이에 거래 관계가 있어 피고의 B, C, D에 대한 채무 (실질은 A의 돌려 막기를 위하여 A가 피고 명의로 거래한 계약에 기초한 채무) 변제금이 원고 명의로 송금될 것이다'라고 말하였고, B, C, D 등은 원고에게 송금액과 같은 액수의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주었다.
5) 원고는 B, C, D 등에 부당이득 반환 청구를 하였으나 패소했고, A는 사기죄로 유죄판결이 확정되었다.
나) 소송의 진행 과정
1) 의뢰인인 피고를 만났을 당시 의뢰인은 1심에서 전부 패소를 한 상황이었고, 원고인 상대방은 피고 의뢰인을 상대로 의뢰인이 B, C, D로부터 냉동새우 등을 구입하였다. 이에 따라 피고는 B, C, D에 채무를 부담하고 있으며 원고가 A씨에게 속아 B, C, D에 위 금액을 송금하였고 이로써 피고가 B, C, D에 부담하는 채무를 대신 변제한 셈이므로 구상금 또는 부당이득 반환으로 해당 금액을 원고에게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1심은 원고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2) 1심에서 의뢰인은 대형 로펌을 선입하여 소송을 진행하였는데, 1심에서 의뢰인 측 로펌은 주로 피고와 B, C, D 사이의 거래가 A에 의하여 허위로 꾸며진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데 주력했다.
즉, A가 주도한 10여 차례에 걸친 B, C, D와의 냉동새우 거래가 거래 장부상에만 그렇게 기재되어 있는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 증인을 소환하고 사실조회를 하는 등 치열하게 다투었지만, 결국 1심에서는 실제 냉동새우가 오고 간 거래의 실체가 있다고 판단되어 의뢰인이 전부 패소한 것이었다.
3) 항소심에서 사건을 맡아 기록을 살펴보니, 10여 차례에 걸친 B, C, D와의 냉동새우 거래 하나하나에 대하여 세금계산서, 냉동새우 운반차량 조회 B, C, D의 장부와 그 냉동새우가 건너간 판매처 장부와의 대조 등 1심에서 의뢰인을 담당한 로펌에서도 상당히 일을 열심히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4) 그래서 1심에서 법리에 대한 검토는 충분히 되었을 것이라 믿고 사실관계 확정에 있어 빠진 것이 있나 기록을 뒤지던 중 문득 '잠깐, 내가 배운 대위변제에 따른 구상권은 변제 의사, 즉 타인의 채무를 변제한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근데 원고는 분명히 A한테 속아서 B, C, D 회사에 송금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이건 의뢰인이 실제로 B, C, D에 채무를 부담하는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기각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5) 구상권 즉, '내가 너의 채무를 대신 갚아줬으니 나한테 그 액수만큼 줘'라는 청구가 인정되려면 그 금액을 송금하면서 나한테 다른 사람의 채무를 대신 변제한다는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사안은 원고 스스로 A에게 속아서 보냈다고 주야장천 주장하고 있는 사안이었다. 따라서 의뢰인인 피고가 B, C, D에게 실제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판단할 필요조차 없이 구상권 청구는 기각되어야 하는 청구였다.
6) 게다가 본 사안을 다시 구상해보면, A가 원고를 기망하여 원고의 금원을 편취한 다음, 피고에 대한 손실 보전 채무를 이행하는 방편으로 피고의 B, C, D에 대한 채무를 대신 변제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대법원 판례는 채무자가 편취한 금전을 자신의 채권자에 대한 채무 변제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 채권자에게 편취 사실에 대한 악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한 유효한 변제이기 때문에 편취자가 채권자를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청구를 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7) 즉, 누가 내 돈을 사기 쳐서 자기 빚을 갚는데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받을 빚을 받은 채권자가 사기 친 사실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모든 것이 아니라면 채권자에게 그 돈을 돌려 달라고 할 수 없다는 법리이다.
8) 이 법리를 본 사안에 적용하면, B, C, D 등에 금원을 송금할 당시 그것을 편취 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 피고에게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이상, 가사 의뢰인인 피고가 B, C, D에게 실제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채무를 면하게 된 것에 대하여 어떠한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9) 우리 측은 항소심에서 이러한 법리를 집중적으로 주장하였고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그렇게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던 냉동새우 거래의 실체 여부에 관하여 판단조차 하지 않은 채, 1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고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는 의뢰인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다) 사건에 대한 평가 및 교훈
1) 소송을 하다 보면, 상대방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실의 입증 여부와 관계없이 상대방의 주장 그 자체로 법률상 이유가 없는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한다. 문제는 사실관계가 복잡한 사건일수록 사실관계의 정리에 매몰되어 법리적인 검토가 소홀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2) 본 사건에서 의뢰인의 1심을 담당했던 로펌은 상당히 열심히 하였고, 엄청난 분량의 내역과 세금계산서 분석, 엄청난 양의 정부 내역 상호 조회, 개별 운송 기록 및 배차 기록 조회 등 사건 처리에 많은 시간을 들였던 것으로 보였다. 다만, 결과적으로 쓸데없는 곳에 공을 들인 꼴이 되었다.
3) 어느 한 쟁점에서 치열하게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여 거기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사건 전체를 보고 사안에서 의뢰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법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에 근거하여 주장을 정하고 그 주장에 맞게 사실관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4) 복잡한 사실관계가 얽혀 있는 민사소송은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법리를 놓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그렇기에 1심에서 패소했다고 하더라도 항소심에서 다른 관점을 가진 변호사를 만나보는 것이 좋다.
5) 열심히 하는 변호사는 좋은 변호사지만 요즘 노력하지 않는 변호사는 거의 없다, 변호사에게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을 보는 눈, 인사이트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사건을 쉽게 이길 수 있을까 계속 궁리하고 꾀를 쓰는, 그런 게으른 변호사가 아이러니하게도 야근하며 노력하는 변호사 보다 의뢰인에게 더 좋은 변호사 일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법률사무소 AL :: 사실관계가 복잡한 사건일수록 법리적인 검토가 소홀해지기 쉬운 이유 | 작성자 lawal